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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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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악몽 치유 음악 60년대 가난과 군대에서 격은 선임병의 행패와 구타 그리고 배곱음의 기억들은 악몽이 되여 반세기가 훨 지났어도 이노병을 놓어주지 않고 이밤도 악령이 빙의 된듯 나를 괴롭히고 있다. 기억속에 둥지를 틀고 떠나주지 않는 60년대 악몽을 몰아 내기위해 퇴마의식 대신 치유 음악을 들으며 황페해진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권혜경의 동심초 오랫만에 검색으로 찾아 들어보는 권혜경의 동심초를 들으며 60년 대로 돌아가 역경의 새월을 회상하며 그때 그시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이밤 이노병은 가슴이 저려오는 애절한 추억의 계곡에서 방황하고 있다. 1964년에 아래 동영상 동심초가 제작될때 이노병은 논산 훈련 소에 입대해 신병 교육을 끝내고 대전육군 통신학교에서 5개월 굶주린 배를 욺켜지고 지옥같은 곳에서 통신교육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때의 배고픈 기억은 어제일 처럼 지금도 느껴지며, 그 고통을 어떻게 참고 견뎟는지.....북한은 배고픈 인민은 먹을 생각외 반항 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며 배고픔음을 통치에 악용하지만....60년대 군대에서 배고팟든 한국군의 현실은 무어라고 설명을 해야할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답을 찾을 수가 없다.
1965년 신불산 정상에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고향이고 사람들은 그고향을 이역 만리 이민지에 떨어져 살면서 잊지못하고 하후에 한두번 씩은 두고온 고향을 떠올리며 언제 다시 가볼수 있을지 생각 하면서 살고 있다. 은퇴한 이노병은 그 두고온 고향중 태어난 영등포를 그리워하며, 또 6.25 전쟁후 페허가 된 부친은 영등포에 있는 공장을 버리고 김포로 가서 십리길 김포 평야를 걸어 삭풍이 몰아 치는 한겨울, 폭우가 쏫아지는 한여름애도 걷고 또 걸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후 그곳을 떠났어도 그 김포가 고향 다음으로 생각이나고 그리운 곳이다. 여름이면 한강에서 친구들과 낙시와 수영으로 보낸 그때 그시절이 그리워 오늘도 김포 신도시 한옥을 온라인에서 들러보며 집을 팔아 그곳으로 이사갈가 하면서 이룰수 없는 꿈같은 생각을 해보며 오늘..
황홀한 은행 단풍 몇년만에 처음 만개한 은행나무의 황홀한 노란 단풍을 보면서 병악해진 이노병은 천국으로 나 떠나기전 황홀한 은행나무 단풍잎들이 나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하는듯 정말 오랫만에 노오란 은행 나무 단풍잎에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뉴욕시에서 활동하는 김도영 사진 작가님을 소개합니다. 미주중불 이슬님블러그에서 허락빋고 옮겨왔습니다 Photographer 김도영 4년 전 J 블로그에 포스팅 된 그의 사진 작품을 보았다. 미주 한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J Blog' 라는 사이트가 있다는 걸 맨 처음 알게 되었을 당시 내 관심은 오직 여행, 특히 유럽여행에 유난 했던 나는 결국 모 블..
현충일에 대문앞 태극기 바라보며 한국의 현충일 오후,집앞에서 바람결에 희날리는 태극기를 보는 순간 반세기도 더 이전에 가난해서 헤어져야만 했든 첫사랑의 여인을 다시 만난듯, 가슴은 저려오며 목이메어 말을 잊지 못하며, 다만 그녀를 품에 앉고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나 당신을 아직도 잊지 않..
살인적인 더위에 머물다 82년 5월 중순, 택사스로 특명을 받고 전근을 왔을때 이곳은 악명 높은 더위의 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여름이면 흐르는 땀이 양다리로 흘러 내리며, 군복바지가 피부에 척척 달라 붙고, 인간의 피를 빠는 진드기가 피부속으로 파고들때 그통증은 말로 표현할수 없었다. 전쟁터였든 월..
문둥이끼리 만나면 반갑듯 우리도 만나면 반갑다 2달전 처음 이모자 쓰고 샤핑간날 흰둥이 검둥이, 애들이나 어른이나 Thank you for service to our country! 고맙다라는 말을 건네며,이 늙은 Chinky 한테 악수를 청했다. 똑같은 모자 쓴 우리끼리 만나면 우리 미운 오리새끼들은 Well come home! 으로 인사하며, 살아 왔음을 우리끼리 확인하며 손잡고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