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서울 시내를 누비든 작은 버스가 있었는데 그 버스를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지 않는다.자판을 두드려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잊혀저 가는 것들을 다시 찾아내어 한편의 글을 완성하며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이노병의 노력은 몇일전 부터 60년대 사진의 작은 버스 이름을 찾아 기억속을 헤메었으나 오늘 아침 이순간도 그 작은 버스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몇일을 기억속의 수많은 계곡을 오르고 내리고 샅샅이 뒤져도 도무지 저 작은 버스의 이름은 찾아 내지 못하고 지처 숨을 헐덕이다가 커피 한잔 끓여 마신후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자판을 두드리며 저버스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다시 기억의 계곡을 뒤지기 시작한다.
60년대 서울과 지방의 거리를 누비며 시민들의 발이 되여주었든 작은 버스들의 정체는 바로 미군의 닷지(Dodge)3/4톤 트럭이었다.72년 월남에서 근무를 마치고 특명을 받아 주한미 8군으로 배속되여 부평병참기지 내 주한미군 보충대 자대로 배치되였다. 그때 주말에 서울을 가려고 차를 몰고 부평에서 경인선 고속도로 진입전 왼쪽의 큰공장 건물을 처다 보았을때 그곳에는 눈에 익은 수많은 닷지 트럭이 주차가 아닌 벽에 엔진과 차대는 없는 몸체만 줄지어 서있는 광경이 보였다.
다음주 부대내에서 일하는 동포들에게 주말에 본 몸체만 남은 닷지 군용트럭의 정체를 물어보니..아 그거요! 그 몸체만 남은 닷지 트럭은 한국군에서 6.25전 후에 사용한 닷지트럭으로 60년대 일제 도요다 군용트럭이 한국군에 들어 오면서 미제 닷지 트럭은 용도 페기되여 민간에 불하가 되였습니다. 민간에 팔린 닷지 트럭은 엔진과 차대는 드럼통을 두드려 윗시진의 미니 버스로 재 탄생해 전국의 거리를 달리고, 닷지 트럭의 남은 몸체(Body)는 고철신세가 되여 공장벽에 줄줄이 세워졋지요. 몸체를 줄줄이 세워놓은 업제는 닷지 트럭으로 미니버스를 만들어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노병이 한국으로 전근한 72년 이작은 미니 버스는 퇴역해 이미 서을 시내에서 사라져 찾아 볼수가 없었다.
의정부에는 Camp red cloud 미군 부대가 있었다. 미국으로 가기전 그 미군부대 내 매장에서 우리회사가 점포를 운영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그부대를 가고 올때마다 의정부에서 저 사진의 미니 버스를 타고 다닌 기억이 남아 있다. 사진의 미군찝차는 한국에서 케네디 찝차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나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는 알수가 없다.
사진의 어린 아이들중 가운에 휜옷을 입은 소녀는 혼혈아다. 그당시 주한미군기지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런 혼혈 아이들이 동네에 한명이라도 있으면 무차별적인 차별을 하였든 시절이기도 하다. 나와 다르다고 가해지는 이런 무차별적인 인종차별은 미국내에서도 똑같이 오늘도 자행되고 있다. 미국에서 격은 인종차별 수모를 112 열거 할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야만적인 차별은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날까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노병은 확신한다. 왜? 동족끼리도 여러가지 이유을 붙여 차별과 멸시를 하는 현실에서 타인종이 모이면 인종간의 차별은 어쩌면 당연한것이 아닐까?
지난날의 추억의 계곡 등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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