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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환생한 신선

태어난지 몇달된 배고파 우는 딸을 품에 앉고 마치 동네 공터에 무대를 설치한 써커스 단원들이 써커스 공연전 무대에 올라 신파조 단막극 연출하듯 딸의 이름을 부르며 달래는 애 아빠, 당장 먹을 쌀이나 땔 연탄이 없어도 가족을 위해 돈 벌 생각보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중학교를 졸업한 내 눈에 비친 그는 마치 하얀 도포 입은 신선이 깊은 산 계속 넓직한 바위에 앉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전주곡 삼아 거문고 뜯는 모습을 연상나게 하곤 했다. 나는 그분이 자신이 치는 기타소리에 도취되어 현실을 잊은 듯한 모습을 볼떄 마다 이분이야 말로 신선이 되였든 한 인간이 죽어 다시 인간으로 환생되지 않았나 하는 착각을 하곤 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그당시 50년대말 60년대초 6.25 전쟁후 고난의 삶을 살아갈때 현실을 잊고 신선 처럼 사셨든 분은 바로 나의 이모부님이 시다. 신선 같은 삶을 사시는 남편을 둔분은 바로 나보다 12년 년상 이신 내 이모님이시다. 내 부친이 딸만 셋을 둔 장모님을 모시며 살아 내 막내 이모님은 나와 한집에 살며 자라 이모보다 누이 같은 사이로 자랐다.

 

환생한 신선을 남편으로 맏은 이모님은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고 부양하는 힘겨운 삶을 사셨다. 이모님의 힘든 삶은 옆에서 지켜보는 15세 소년이었든 우리집안도 역시 부친의 사업실패로 파산해 별명이 귀공자였든 나의 삶은 살기 위해 공장의 노동자가 되여 나이를 속이고 방직공장 보일러 실애서 타고 남은 탄재를 퍼나르는 중노동을 시작으로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네 딸을 둔 이모님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 보며 도울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뿐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시간이 지나 이노병은 미국으로 떠나 내 부모 형제를 미국으로 불러들여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 났다. 그사이 나도 결혼해 가족을 갓게되여 지척의 이모를 돕지 못했다. 내 부모 형제만 돕고 이모를 도와주지 못한 죄책감에  이노병은 2013년 심장 수술전까지 매년 성탄절이면 네 사촌 자매들이 어릴때 과자 하나 사주지 못한 미안함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각종 초코렛과 생필품을 소포로 보내거나  고향방문때 용산 미8군수퍼에서 고기를 사다 이모님께 들였다.

 

심장수술후 건강이 좋지 않아 다시 이모님과 사촌들을 잊고 지내다 초가을 이모님을 뵙기위해 고향을 찾아왔다. 이모님 집으로 전화를 하자 이미 전화는 끊겨 동생을 통해 사촌들을 만나 들은 이모님 근황은 건강이 악화되여 요양원에 입원하셨다. 지난 목요일 사촌들과 이모님이 입원하신 요양원을 방문할때 나는 아빠의 품에 안겨 울던 큰 사촌과 함께 오라고 부탁을 했으나 큰 사촌 동생은 오지 않았다.

아모남과 사촌동생들
노병과 이모님

노년이 되자 이노병은 이모부 품에 안겨 울든 큰 사촌 여동생의 가련한 모습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자식을 부양하지 못한 이모부에 대한 원망이 엄습해 올때 마다 이노병은 이모부 품에 안겨 울던 가련한 사촌동생의 모습이 떠오르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제 다시 고향방문은 내 건강이 좋지 않아 없을지도 모른다. 죽기전 꼭 보고 싶은 큰 사촌동생

을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내 손녀 레니와 같은 나이와 비슷했을때로 손녀를 많이 닮았든 기억이 있을 뿐 그후 본적이 없다.

 

이모님의 요양원 방뮨을 마치고 함께 갔든 두사촌 여동생과 두번째 동생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노병은 그동안 이모님과 사촌을 도와주지 못한 죄송함의 사죄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작은 봉투 4개에 작은 선물을 담아 사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식사후 헤어지며 사촌들과 다시 만남을 약속하며, 그떄 이노병이 죽기전 꼭마나보고 싶은 큰 사촌과 꼭 함께 오기를 부탁하며 헤어졌다. 

 

디지털시대 이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사연을 담아 하늘에 떠있는 별에 새겨두고 저세상으로 떠났으나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는 이노병은 불러그에 내 사연을 담아 남겨 두기 위해 정든 고향의 초가을 깊은 밤 하늘아래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Epilogue

이모님 요양병원 방문후 숙소로 돌아 오는 길은 험난해 밤 10시가 넘어 도착했다.

이번 고향방문의 숙소는 서울과 거리가 먼 지방에 정했기 때문이다. 오늘 늦게 일어나 

밥을 먹고 근처 카페를 찾아가 라떼 한잔 앞에 놓고  앞으로 남은 여정을 생각하며

오후를 보냈다.

초가을 하늘 아래 고향의 이름 모르는 카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노병 오를리

 

마리안 앤더슨의 내고향으로 날 보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