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한지도 2개월이 넘어서 자금쯤 건강을 회복하고
잃었든 근육도 운동으로 회복이 되였을 텐데..
그넘의 고만이가 다시 끼어들어 건강을 해치고 있다.
바른쪽 발 엄지 발가락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찾아가자 단골
돌팔이 의사는 혈관을 뚫을때 혈관을 막고 있든 부스러기가 떨어저 나가
혈관을 막아서 오는 증상이라고 했으나 날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져 대학병원 응급실을 아들과 함께 갔다.
아들 녀석과 친한 응급실 운영 의사는 아픈 발가락을 보자 마자
염증이 왔다고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그가 처방해준 일주일치
약을 먹고 나자 통증이 사라자는 듯하다 다시 염증이 재발해 응급
실을 재방문하자 같은 항생제 처방에 복용을 배로 늘렸다.
2틀을 전보다 배로 올린 항생제를 먹고나자 이번에는 위장이 견디지 못하고
음식을 먹는대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항생제와 모든약의 복용을 중지하고 2틀을 누어서 지내자
오늘은 조금 회복이 되여 아침부터 부페 식당에 가서 아침을 푸짐하게
먹고 집으로 돌아와 불러그를 뒤적일때, 동포 불러거가 올린
포스팅에 콩나물 무밥을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그포스팅을 읽고 나자 갑자기 콩나물 무밥이 먹고 싶어 견딜수가 없었다.
동포수퍼를 가자니 장장 30마일을 달려가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동네 근처에 있는 월남 수퍼로갔다.
월남수퍼 갈때 마다 71년 747전세기를 타고 캄란만에 내려 월남
인들을 처음 보았을때 월남 여인들이 어찌나 키가 작은지 나는
걸리버 여행기의 난장이 나라에 온것같은 착각을 했었다.
그런 그들이 세계최강국인 미군을 월남에서 외교로 몰아내고 통일을
한 그들의 저력을 보면 걸리버 여행기의 난쟁이 나라 국민같이 작은
사람들이 6ft 키를 가진 나보다 몇배나 더 커보인다.
콩나물과 무를 사고 한박스에 20개가 들어있는 신라면 한박스를
$13.88전에 사들과 집으로 와서 콩나물 무밥을 안치고 양념장을
만들어 놓고 밥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때
밥솟에서 밥이 다되였다는 여인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밥솟을 열고 주걱으로 밥과 콩나물과 무를 잘섞어 한그릇 퍼들고
만들어 놓은 양념장 한수푼 푹퍼서 밥위에 붓고 비벼먹자
그동안 발가락의 염증으로 고생한 피로감이 일시에 사라지며
온몸에 새로운 기운이 넘처나는듯 하다.
이렇게 병마에 휘달리다 보니 고향으로 돌아가 시골에 있는
빈집을 사서 고처 여생을 보내려든 계획이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든다.
고향에 가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택사스에 몇일을 계속 가을 비가 내려도 고향에서 내리는 가을비 처럼
내마음을 적셔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적시며, 어깨와 등뒤로 흐르는 고향의 가을비를 맏으며
걷는 고향의 시골길을 언제쯤이면 갈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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