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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이룰수 없는 첫사랑의 연민을 느끼는 총기

일요일, 교회 예배 끝나고 한국수퍼에 들려 장을 보고 돌아오는길, 국립묘지를 들러 보고 왔다.

 

섭씨 40도가 다 되어가는 한여름날 오후, 오늘은 장차 이노병이 잠들 국립묘지 전체를 들러 보았다. 땅덩이가 큰 택사스 답게 국립묘지의 크기는 정말 대단하게 커 그 크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가 않을 정도로 컷다. 교회 예배 끝나고 가끔 들려 묘지 관리 사무실에서 봉사하는 재향군인 단체 회원들과 지나간 날 월남전을 이야기 하며, 자신들이 격었든 월남 참전 이야기를 꽃피우다 보면 마치 몇십년전 월남으로 돌아가 옛 전우를 만난듯 착각을 느낄때도 있다.

 

국립묘지에 차를 세워놓고 사랑하는 아들과 아빠, 할아버지 묘앞에서 꽃을 꽂으며 더위도 잊고 그들의 명복을 비는 가족들을 볼때마다 이노병은 여름철 마다 염천지옥 같은 이 부더은 택사스를 떠날 생각을 접으며, 이제 나이들어 보니 이노병이 국립묘지에 뭍히면 나를 방문해줄  아들 딸, 그리고 손녀 손주들이 있어 택사스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 나 홀로 혼지 외지에 살다 묻히기는 너무 외로울것 같기 때문이다.

 

국립묘지를 방문할때 마다 이노병은 집에 쌓아둔 많은 것들을 버려알때가 지나도 버리지 못하고 두개의 총기금고에 들어있는 20여정의 총기를 두고도 또 AK47 소총을 사고 싶은 충동과 요즘 매일 싸우고 있다. 가진 모든 총기를 아들이나 사위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나이가 훨 지났어도 결단을 못내리고 또 총기를 사고 싶은 욕망과 싸우고 있다.

 

월남전때 베트콩으로 부터 우리 부대원이 노획했다는  AK 47 소총 한정을  그 병사가  귀국하면서  나에게 30불에 팔고 갔다. 실탄 30발과 함께 구입한 이소총은 몇명이서 사격한후 중대 무기고에 보관하고 있다기 이노병도 귀국할때 팔아 버렸다. 미군규정이 바뀌어 미국으로 귀국할때 노획한 소총은 총열을 산소 용접으로 봉한 총에 한해서 미국으로 귀국때 가지고 귀국 할수 있어서 처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총열을 용접한 총은 총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었다.

 

몇일전 온라인 미군PX를 검색했을때 미국 Centurion 총기 회사가 제작한 AK소총을 800여불에 판매 하고 있었다. 오늘 오후 국립묘지를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검색해서 찾은 AK 47을 당장 주문하고 싶어서 가진 총기도 버려야 될 이노병이 AK 47을 사고 싶은 충동과 이순간도 싸우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구글에서 검색하자 이총기 회사가 제작한 AK 47은 600 여불 부터 1,200 달러로 사양에 따라 값의 차이가 있었다.

 

이노병이 소유한 총기중 내가 가장 아끼는 총은 M1 Garand 저격총과 M1 Carbine 소총이 있다.

M1 Garand Sniper rifle
M1 Carbine

 

1964년 봄, 한국군에 입대해 논산 신병훈련소 30연대에서 신병훈련받을때 사용한 묵직한  M1 Garand 소총과  가볍고 날렵한 M1 Carbine 으로 부터 이노병은 이두  소총을 대할때 마다 이루지 못하고 헤어진 첫사랑 같은 연민의   정을 느끼며, 저격수용 M1 Garand는 Fire Place 위에 올려 놓고, M1 Carbine은 10발의 실탄이 든 탄창 2개와 함께 침대 머리맡에 세워 놓고 언제 방문 할지 모르는 도둑들과 한판 겨루기  위한 방범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두 총기와  반대로, 이노병이 미군에 입대해서 월남에서 사용했든 M16 소총에 대한 애정은 없다. 너무 사격을 많이해 이노병의 청력을 뻇어가서 일가, 아니면 아마도 M1 Garand와 비교화 M16은 Toy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이노병은 M16에 대한 수집은 없을것 같다.

 

염천지옥 택사스 현재 오후 6시 15분, 기상예보 뉴스는 섭씨 40도가 되였음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