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몇잔 마시면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enzyme)가 없어서 몇잔술에도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괴로운 이노병은 그래서 술마시고 제세상 만난듯 날뛰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부럽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수가 없다. 북괴가 통일전쟁이라고 어거지를 부리고 있는 6.25전쟁때 서울 촌구석 영등포에 있는 부친의 아교 공장이 페허가 되여 몇년간 외할머님의 친정인 김포에가서 살았다. 전쟁전에 김포에 정미소와 땅을 많이 사두어서 편하게 김포 시골 마을에서 살때 그동네서 선비라는 별명으로 불리든 한 중년가장이 살고 있었다.
이선비님은 평시에는 누가 말을 걸어도 못들은체, 못본체 반응이 없는 사람으로 유명해서 선비라는 별명까지 얻으셨는데...이선비님은 술몇잔만 마시면 이상인 주벽이 발동해 고래고래 알수 없는 소리를 지르시다가 마지막 술주정끝은 벼락같이 동네 우물로 달려가 우물속으로 풍덩 빠져 들어가 하우적 거리며 계속 알수 없는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그때 어린시절에는 그선비님이 술만마시면 왜 그렇게 돌변하는지 몰랐고 또 이해가 안갔는데 지금 나이들어 생각해보면 술마시고 죽은 귀신에게 빙의가 되여 귀신이 시키는대로 복종을 한것 같기도 하다.
50년대초는 전쟁중이었다. 그래서 군대갔다가 살아서 돌아 오거나 입대해서 훈련소로 떠나는 동네 청년들의 가족들이나 외할머니 친정 친족청년들 집에서 술상을 거대하게 차리고 청년인 아들의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서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어릴때 본 이런 술자리는 술과 음식을 먹은후 젓가락으로 술상을 때리며 장단을 맞추며, 밤새도록 유행가를 소리높여 고래고래 부르며 놀았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어린마음에도 아니 밤새 술마시며 노래부르고 새벽까지 놀아도 지처 떨어지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런술자리에 동네 정미소 주인이고 이장을 했든 내 부친이 참석해 술마시며 젓가락 장단에 유행가를 목청높여 남들처럼 부르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부친도 술 몇잔만 마시면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어서 고생 하시는것을 본적이있어서 바로 그때문인 이었던것 같다. 내 3형제중 형님이 술고래, 정말 많이 마셔도 끄떡없다, 내가 보기에도 신기할정도로 많이 마신다. 첫째 남동생이 소주두병의 주량이고 나와 막내가 소주몇잔이 주량으로 부친을 닮았다.
군대갔다 살아돌아온 청년이나 군대가는 청년들을 위한 술판은 계속이어저 내려와 이노병이 영장을 빋고 한국군에 입대할때도 이어져 고교동창들이나 동네 친구들이 그때 방석석집으로 불리며, 술시중드는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모여서 몇시간 동안 술마시며 젓가락 장단치며 고래고래 목청높여 유행가 부르며 군대가는 친구를 위해 파티를 열어주었다. 한국에는 옛날 부터 여러 주법이 있어서 어른과 한상에서 술마실때 예의가 있고 손아래 사람과 술마실때,친구들과 미실때 예의 등등 동방예의지국에 손색없는 주법이 많이 있다.
조상들이 남긴 주법외에 술자리나 영화 드라마에서 여인들이 술을 따라 주어야 술맛이 난다는 주법아닌 말이 자주등장 한다. 조상이 남긴 주법이야 이해가 가지만 여인이 따라주어야 술맛이 난다는 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같은 술이라도 여인이 따라주면 맛없는 술맛이 좋아진다는 말인지, 아니면 술은 여인이 따라 주면 운치가 있어서 술맛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말인지 술못하는 사람이 이말을 들을때 아무리 이해 하려고 노력을 해도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차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술마시는 민족은 망한다는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다. 다산 정약용선생께서 왜 이런 말씀을 남기셨나 하고 여러가지 기록을 검색해보니 사마천이 남긴 고구려인의 풍습에 고구려인들은 술과 가무를 즐기며 이에능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우리민족은 옛날 상고시대부터 부터 술과 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고 이에 대한 페단이 우리민족의 마지막왕조 조선조까지 이어지고 현재도 그명맥이 이저져 폭탄주가 탄생하고 또 치맥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조 말기에도 술로 인해 발생하는 폐단이 얼마나 많았기에 정약용선생께서 술로 인한 페단을 조금이나 방지하기 위해 백성들에 경고하는 뜻으로 차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술마시는 민족은 망한다는 충고를 남기신것 같다. 오늘 아침나절에 오든 비가 10시넘어 그치자 그동안 벼르든 인슈린 타기 위해 VA병원 약국으로 가서 30분 기다려 인슈린을 받았다. 옛날에 비해 먹을 음식이 풍만해져 먹는데 열중하고 운동부족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당뇨가 찾아온다. 당뇨약에 알러지 반응이 있어 이노병은 혈당강하제를 사용하지 못해 인슈린으로 혈당을 조절한다.
하루에 2-3번 자신의 신체에 인슈린을 주사하는 고통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름진 음식 피하고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관리를 해야 당뇨라는 병고가 칮아 오지 못한다.
4개월 사용할 인슈린.주사기로 죽기전까지 하루에 두세번 직접 주사를 맏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세상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비 내리는 밤 동파육을 만들다 (0) | 2019.02.28 |
---|---|
손주 별명은 Pretty boy (0) | 2019.02.23 |
겨을비 내리는 날 (0) | 2019.02.20 |
기적 처럼 좋아진 신장기능 (0) | 2019.02.08 |
한겨울에 잡초깍기 (0) | 2019.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