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 기우제를 지내서 일까, 어젯밤 새벽부터 아침까지 내린 단비가
대지를 적시자 텃밭에서 시들거리든 들깨와 잔디가 생기를 되찾았다.
비를 내린 구름 믿에 서있는 내자신이 마치 이국땅 하늘 아래 서있는 느낌마저
드는 대초원의 오후는 새로운 세상이 펼퍼진듯 모든 사물이 새롭고 싱싱하다.
독일의 한 도시에서 전철을 타고가든 한국 여인이 독일여자로
부터 눈이 쭉찟어 졋다고 어린 두자녀가 지켜 보는 가운데 목까지 졸리고
폭행을 당했다.세계화가 된 21세기에 엄마가 폭행을 당한 현장을 지켜본
어린 두자녀들은 이사건으로 평생 백인에 대한 공포감을 느기며 살아가야할
생각을 하면 정말 안타갑다.
구미에서 사는 동포들은 찟어진 눈때문에 가끔 인종간의 차이를 모르는
무개념 백인 남녀와 그들의 어린 자식들로 부터 나를 보는 순간 두손을 자신의
둥글고 큰눈 양쪽에 대고 뒤로 젓히며, 네눈이 이렇게 쭉찟어졌어! 하며
깔깔거리며, 조롱을 하는 백인들 수도 없이 조우를 했을 것이다.
이런 수모를 당한 대표적인 동포중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따님이 있다.
이차대전떄 미해군 중위로 복무했든 안창호 선생따님이 해군정복을 입고
있을때 한 백인 소녀가 다가와 침을 밷으며, 더럽다고 했다.
타인종에 대한 증오 범죄(Hate crime)는 타인종간의 편견이 주요 원인이다.
19세기, 백인 선교사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조선에 상륙하자 해괴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해괴한 소문의 정체는 색목인 선교사들이 조선의 어린애를
잡아 먹는다는 내용으로, 조선인들이 이들을 배척하기 위해 조선 8도에 퍼뜨린
유언비어였다.
해외에 나가면 인종적인 편견으로 조롱을 당하는 한국인들이 한국에서는
타인종에 대한 편견은 백인들 못지 않게 거칠다.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을
옆이나 앞에서 막말로 인종비하를 거침없이 해대면서 백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최상의 대우를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역겁다.
몇일간격을 두고 이다도시 아줌마가 두자식을 데리고 동남아로 가는 여행과,
하일이 가족을 데리고 오래곤주 부모집을 방문하는 과정을 여행경비를 대주고
녹화해서 방송하는 이유는 도무지 이해를 할수가 없다.
백인들에 대한 이런 무개념 방송은 자신들을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백인들에게 한국은 그야말로 백인들을 제대로 대접해주는 나라로 전락했다.
별것 아닌 백인 젊은 남녀들 동원해 외국여행이나 국내 여행에 경비쓰고
데리고 다니며, 주접을 떠는 방송을 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다.
방송에서 이런 행위를 하다보니, 백인과 조금 비슷하게만 생겨도 대접을
해주는게 한국인다. 언젠간 한번 쓴 이야기로, 2007년 고향 방문중 알산
호수 공원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석한후 근처 식당에 식사를
하기 위해 같이간 지인들과 함꼐 3층식당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때 식당입구에 있는 홀에서는 관현악 4중주를 연주하는 가운데 결혼
피료연이 열리고 있었다.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화장실을 찾으니 바로 결혼 피로연이 열리고 있는 곳에 화장실이 있었다.
볼일을 보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남자가 내팔을
잡아 끌어, 왜 그러냐고 묻자 아무 대꾸도 없이 무조건 나를 끌고 백인신랑
앞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신랑과 얘기좀 하라는 주문을 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신랑에게 인사와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신랑이 따주는
맥주병을 들고,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관현악의 선율을 들으며, 새신랑과
얘기를(독일인 새신랑은 영어를 잘랬다) 해보니 그날의 주인공인 새신랑은
독일자동차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독일인이었다.
한참 신랑과 이얘기 저얘기를 하고 있을때, 8등신 미인 한국 신부가
입장을 했다.신랑의 소개로 신부와 인사를 나누고 보니 생전 처음보는 남의
신부에게 도대체 무슨말 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었다.
이렇게 황당한 해프닝을 격은후, 내가 신랑앞으로 끌려간 이유를 몇년이 지난
지금도 곰곰 생각해보면, 20불짜리 청바지를 입고, 40불짜리 굽높은 구두에
20년도 전에 구세군 중고품 매장에서 5불 주고산 스포츠 코트를 걸치고,
백불짜리 서부영화에서 볼수있는 노름꾼의 모자를 쓰고, 그야말로 싸구려로
몸을 치장을 했으나, 긴얼굴에 흰수염을 기르고, 훌쩍 큰 내모습이 그럴듯하게
보여, 나를 신랑 앞으로 끌고간 젊은 사람에게는 나를 백인으로 오인하게
만들어 말나눌 상대가 없는 신랑이 딱해 보여 나를 독일 신랑앞으로 끌고 갔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아마 거의 99파센트 확실한것 같다.이와함꼐 그떄 격은
일은 한국에서 백인이나 백인 비슷항 한국인도 백인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입증할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온 동남아 노동자, 피부가 흰 백인들 모두가 똑같은 외국인들이다.
피부가 검다고 전철에서 동남아 인들을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말이나 행위로
동남아 인들에게 심한 모욕감을 주는 행위는, 독일 전철에서 두자녀가 보는
가운데 한국여인에게 폭행을 행사한 무개념의 독일여인의 행위와 하나도
다를게 없다.
6-70년대 여행을 제한하든 시대는 역사의 한 장으로 지나가고 전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 피부가 다르고 눈색과 머리칼이 다른 백인들은
이제 더이상 흥미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방송에서 백인 남녀들 돈주며
방송에 출연 시키는 웃기는 행위는 제발 그만 했으면 좋겠다.
백인남녀들 위해 쓸 비생산적인 돈이 있다면 차라기 소년소녀 가장을 여행
시키고 그들의 애절한 사연을 방송에서 취재하는게 생산적이다.
70년대 켈리포나아주 고속도로변 빌보드에는 검은 피부 콤프랙스에 시달리는
흑인청소년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Black is beautiful"
(검은 색은 아름답다)이라는 문과와 함꼐 흑인 선남선녀의 사진을 함께
올렸다.
찟어진 눈 콤프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찟어진 당신의
눈은 아름답다"고 자신있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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