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사는 이야기

우리 비행기 다시는 안탄다!

82년에 한국근무를 마치고 돌아온후, 1998년 달라스 공항에서 한국으로 직행하는

우리국적 대한항공 여객기에 탑승을 하는 순간 은퇴한 미육군 부사관 쫄병이 기내

승무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지정된 좌석을 찾아갈떄 느긴 감동은 그야말로 이민온

소수민족이 이민지인 미국에서 무수한 이민족들로 부터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느끼며

살다가 대한항공 여객기에 발을들여 놓는 순간 이민족들의 억압으로 부터 해방이 되는 

감격은 무어라고 표현을 해야 좋을지 모를정도로 감격 그자체엿다.

 

나는 그날 그순간 부터 우리의 국적 비행기가 아니면 절대 타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나의 신념이 어느정도로 강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글이 있어 태공님 카페에 이규태님이 올린글의 일부를 아래 퍼왔다.

 

어느 친구가 버스회사 전무로 있으면서 한 이야기다.
호남놈들 지독하다. 대구에서 물건을 사고 광주로 가는
장사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리가 많이 남은
차가 출발을 얼마 두지 않았는데도, 이 사람들은 탈 생각은
하지도 않길래 물었다. 곧 출발하니 타고 가시라고 권유를
하니 왈 "우리 차(호남고속버스) 타고 갈겁니다." 그 차는 2시간 지나야
있습니다. 하여도 들은 척 하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럴수가 있는가? 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런 부모들이 목이 말라 음료수를 하나 사 오라고 자녀들에게
시켰는데,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롯태 음료수를 사서
집으로 왔더니 부모들이 욕을 한다. "이놈아 당장 해태로 바꿔
오라이" 하니 아이가 해태로 바꿔서 음료를 사왔다.

이렇게 자란 아이가 대구에 있는 친척집에 방학이 되어 놀러
왔는데 외 할아버지가 보니 머리를 깍지 않아 보기가 민망하여
이놈아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깍고 오너라 하며 돈을 건내자
이 손자놈이 하는 말 "집에 가서 깍을 래요" 하더란다. 이 손자
놈의 집이란 광주 이니 말이다.

호남사람들 처럼 나는 자식들에게도 한국을 갈때면 무조건 우리비행기를

타고 가게끔 만들었다. 그러다 이번 한국에 오는길, 우리비행기인 대한항공

에 예약을 하면서 다음 부터는 절대 우리 비행기는 타지 않겟다고 나에게

굳게 약속을 했다.

 

우리비행기만 고집하든 이미육군 부사관이 우리비행기를 버리게 된사연을

들어보면 아마 누구나 동조를 할것이고, 또 나를 절대적으로 지원할것 같아

그이유를 불러그에 고하면 아래와 같다.

 

서울에 있는 모병원에 지난 9월초 리따님의 도움으로 어렵게 예약을 해서

그예약일이 올1월 12일 오전 9시반이었다. 서울로 출발 한달전에 우리비행기에 전화로 예약을 할때 예약 하루전인 1월 11일 출발하면 왕복이 1150불이었다. 그러나 그날 출발하면 한국도착이 병원예약일인 12일 오후 네시라

불가능했고 또 어렵게 한 예약을 후일로 바꿔달라고 하기도 힘들것 같았다.

 

그래서 1월 6일 출발하면 왕복요금은 1360불이고, 인천 도착은 다음날인 7일 금요일날 오후에 도착하게 되고 미군영내에 출입 신고를 할 수가 없어서 1월 6일 전에 떠나면 왕복요금이 어떨가 하고 물어보니 1360불에 100불을 더내라고 했다. 우리비행기 직원으로 부터 그말을 듣는 순간 이미육군 쫄병은 울화가 치밀어 올라와, 아니 무슨놈의 비행기 요금이 고물줄 처럼 늘었다 줄었다 합니까? 하고 쏘아 붙였으나 불편한몸이라 그냥 달라는 데로 1360불을 내고 1월 6일날 출해서 다음날 서울에 도착했다.

 

미국적기인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달라스에서 출발해 동경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갈아타는 불편함이 있으나 우리비행기 처럼 요금이 고무줄 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지도 않고  또 덤으로 5백여불이나 싸다.

 

지금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미육군 쫄병과 동포들에게 사기치는 고무줄 요금을 부과하는 '우리 비행기 다시는 안탄다'를 외치며, 이글을 읽는 독자님들이 우리비행기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한번 묻고 싶습니다!

 

                

 

                  우리 비행기 다시는 안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