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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한국인 이라고 말할때의 괴로움

오늘밤 기온이 다시 영하2도까지 내려갔다.

이렇게 날씨가 추운날이면 나는 예전부터

땅콩을 까먹는 버릇이 있다.

 

땅콩이라도 껍질을 벗긴 땅콩이 아니고  아래

사진 처럼 껍질을 벗기지 않은 땅콩을 손으로

눌러서 깨트려 속에든 땅콩을 꺼내서 먹는 맛을 잊지못해

동네에 있는 왈맛으로 땅콩을 사라갔다.

peanuts.jpg

월맛으로 들어가서 찾아보니  땅콩이 든것같은 봉지가 있어 

집어들고 돈을 내고 사가지고 집으로 와서 봉지를 열자 봉지에

든것은 땅콩이 아니라 호두등 몇종류의 열매가 골고루

석여있는 봉지를 땅콩대신 사들고 왔다.

 

다시 차를 몰고 왈맛으로가 진짜 땅콩을 사가지고 오다보니

바른쪽 옆집에 차두대가 차고앞에 서있었다.

 

3년전, 미공군 현역인 제이슨이 5섯살된 딸과 아내와 함께

워싱턴주로 전근을 갔다가 근무를 마치고 몇일전 돌아왔다.

 

왼쪽집 데이빗 아내 레아가 My space를 뒤져 일년전에

제이슨이 이혼한 사실을 읽어보고 알려주어 동네사람들이

제이슨이 이혼한 사실을 모두 알게 되였다.

 

지난 수요일, 제이슨이 이사짐을 배달한 운송회사 트럭에서

인부들이 이사잠을 내릴때, 일일이 짐을 대조하고 있다가

나를 보자, 워싱톤주로 발령을 받고 이사간후 아내가

결혼생활이 싫다고 이혼을 해달라고 해서 이혼을 해주자

그의 아내는 6개월만에 재혼을 하고 몇달전 애까지 낳았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이혼이 흔한 나라에서 그저 대수롭지 않게 들었으나

제이슨이, 아내와 이혼하고 현재 결혼할 여친과 동거를

하고 있다면서, 여친은 미국에 입양된 한국인이라고 했다.

그의 여친은 직장을 이곳에서 이미 구해 출근을 하고

있어서 혼자이사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이후 25만여명의 고아들이 해외로 입양외였다는 통계가 있다.

대부분 미국으로 입양이 되였으니 미국에서 가끔 입양된

한국고아들과 만나게 된다.

 

10여년전, 변호사 사무실에 이웃을 도우려고 갔을때 상담을

한 직원이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한국인이 한국말을 왜 못하냐고 묻자, 자신은 한국어를 어릴때

배우고 싶어도 배울수가 없는 환경에 있었든 한국에서 미국인

가정으로 입양된 고아라고 자신을 밝혔다.

 

청년의 그대답을 듣는순간 무안하고 또 미안해서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이슨이 집으로 돌아온후 내얘기를 들은

큰딸은 이미 와인을 한병사서 제이슨이 집으로 돌아온것을 환영한다며

갔다가 주었으나 큰딸과 나는 아직까지 제이슨의 여친을 만나보지 못했다.

 

제이슨의 여친을 만날날이 점점 닥아오는데, 동포를 만나 반가워야 할

그순이 괴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입양된 고아들을 만날때마다 애처롭고

미안해 나도 한국인이라고 말하기가 떳떳하지가 못하기 떄문이다.

이런느낌은 오직 나혼자만의 감정이 아니고 미주동포들이면 누구나

다함께 느끼는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세계경제 11위인 한국이 왜 핏덩이 같은 어린자식들을 이순간도 해외로

입양을 보내야 되는지, 우리모두 다함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때가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