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전, 1964년 4월, 옛날 악명 높았든 논산 30연대에서 신병교육을 끝내고 대전육군통신학교에
입교했다. 그당시 대전 육군통신학교 건물은 일본인들이 남가기고간 창고 건물로 몇개 통신교육
중대가 막사로 사용하고 있었다.
통산학교에 입교해서 몇주가 지나자 배가 곺아 오기 시작했다. 논산 신병교육대에서는 신병에 그당시
대한 처우가 많이 개선되여 급식이 정량으로 지급되고 미역국에 들어가는 고기는 신병들에게 공평하게
먹이기 위해 햄버거 고기 처럼 갈아서 국에 넣어 집에서 먹는 미역국 처럼 소고기 맛까지 느낄 정도로
급식이 좋았다.
신병교육대에서 잘먹고 지내다 육군통신학교에 입교한후 통신학교에서 주는 급식은 보리밥에 검은
먹물극 한 그릇이 전부였다. 키크고 덩치가 큰 20대 시절 이노병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서 4개월반
교육 받으며 긂주린 배를 움켜쥐고 생활하며 내가 격은 그 시절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북한에서 탈북한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배곱아 격은 고생담과 이노병이 격은 배곱음은 닮아도 너무닮았다.
허기진 배를 욺켜쥐고 살다보면 통신교육 시간은 그저 앉아서 졸며, 교관들의 강의는 자장가 삼아 어떻게
해야 좀더 먹을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61년이 지났어도 대잔통신학교때 격은 배곱았든 가슴아픈추억이 하루에도 멏번씩 떠오를때 마다
이국땅에서 그아픈 기억으로 마음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당뇨환자라 매일 먹은 보리밥을 대전통
신학교에서 먹었든 양많큼 그릇에 담고 4개월반 메일 먹었든 오징에 먹물국을 재현해 보았다. 보급받은
오징어는 식당에 도착해서 헤체되여 먹물은 교육병에 먹물국으로 끓여주고 오징에 살은 식당담당 사관
들이 팔아먹었다.
어떤날 식당에 사역을 갔을때 기름빼고 남은 대두로 만든 기름에 튀긴 두부가 있었는데...4개울반 동안
기름짜고 남은 짐승먹이로 만든 두부를 먹어본적이 없다. 일제식민치하에서 살았은 집안 어른들로 부터
전해들은 그당시 일제가 배급으로 조선인들애게 준 배급식픔중에 기름짜고 남은 대두 찌꺼기를 주어서
조선이들이 그것을 먹고 살았 다는데,기름짜고 남은 대두찌거기를 병사들에 먹인 군간부들 왜인들과 닮
아도 너무 닮았다.
대전통신학교에서 배곱음과 함께 또다른 추억은 영농장에 철모로 화장실에서 인분을 퍼다가 뿌렸든 기억
이 있다. 물이 귀한곳에서 인분 퍼 날았든 철모를 제대로 닦아내지 못한 철모를 내무반에 들고 들
어가자 인분냄새가 진동해 내무반에서 잠을 잘수가 없었다.
61년이 자난 현재 한국국의 짬밥은 미군이나 타국군의 식사와 별차이가 없을 정도로
좋아져 요즘 군대가서 배곪는 젊은이가 없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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