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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연

1965년 신불산 정상에서

신불산 정상 유튜브 캡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고향이고 사람들은 그고향을 이역 만리 이민지에 떨어져 살면서 잊지못하고 하후에 한두번

씩은 두고온 고향을 떠올리며 언제 다시 가볼수 있을지 생각 하면서  살고 있다. 은퇴한 이노병은 그 두고온

고향중 태어난 영등포를 그리워하며, 또 6.25 전쟁후 페허가 된 부친은 영등포에 있는 공장을 버리고 김포로 가서 십리길 김포 평야를 걸어 삭풍이 몰아 치는 한겨울, 폭우가 쏫아지는 한여름애도 걷고 또 걸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후 그곳을 떠났어도 그 김포가 고향 다음으로 생각이나고 그리운 곳이다. 여름이면 한강에서 친구들과 낙시와 수영으로 보낸 그때 그시절이 그리워 오늘도 김포 신도시 한옥을 온라인에서 들러보며 집을 팔아 그곳으로 이사갈가 하면서 이룰수 없는 꿈같은 생각을 해보며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포 다음으로 그리운 곳이 바로 양산 신불산 정상이다.

사진 뒤쪽이 신불산 정상. 강풍이 나를 산정상으로 날려 보낼듯 강풍이 몰아치는 날의 사진.

 

미8군 장거리 통신대 영내 철조망이 뒤로 보이는 Microwave relay station Brooklyn site는 신불산 정상 바로 아래 주둔하고 있었다.사시사철 강풍이 몰아치는 신불산 정상에서 보낸 10개월, 일하지 않고 매일 당구 치며 거칠것 없이 현해탄 건너 일본에서 건너오는 일본티비 방송 보면서, 공짜 영어선생들로 부터 영어를 배우며 최상의 미군음식을 먹으며 지냈든 그 시간들이 정말 이순간에도 사무치게 그리운 날들이다. 아침 잠을 9시 10시까지 자도 누구하나 왜 일어나지 않느냐고 깨우는 선임병들과  구타가 없는 미군 병영 생활은 마치 멀고먼 험한 여행길 끝에 목적지에 도착해 지친몸을 쉬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순례자 처럼, 마음 편하게 시간들을 보낸 경남 양산의 신불산이 오늘 이순간도 너무 그리워 사진을 찾아 올리며  사무치게 그리운 그곳에서 살던 이야기를 오늘도 차판을 두들겨 불러그에 올리고 있다. 

윗사진 바로 믿에서 찍은 사진으로 생활관 건물이 보인다.

60년대 그당시 사진이 별로 없다. 윗사진은 함께 생활하든 문병장과 나에게 영어를 가르처주든 미군병사.미국이민전까지 가난한 생을 살았든 이노병은 사진을 찍을 마음의 여우도 없어서 이민을 온후에도 별로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은퇴한 후에 그나마 사진을 찍으며 살수 있는 마음의 여우가 생겨서 그나마 다행으로 손주들과 많은 사진을 남기며 살고 있다.

신불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온라인에서 몇일 뒤져 찾은 신불산 정상 사진으로 80년대 미8군통신대 철거후 직후 사진으로 보인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로 닷지 트럭으로 인력을 수송하고  두돈반 트럭으로 보급품을 싣고 올라가든 길이 아련하게 보인다. 양산읍에 

놀러 갔다가 객기가 솟구치는 날이면 차를 타지 않고 양산읍에서 몇시간 걸어서 통신대로 올라갔든 젊은 날 혈기가 있었든 시절 아름 다운 추억들이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목구비 마다 서려 있다.

 

아래 음악은 69세에 전국노래 자랑 입상한 윤경옥님의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