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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연

마할리아 잭슨의 흑인영가

이민한 동포들이 미국 대도시 흑인 지역에서 오늘도

이들을 상대해 사업을 하고 있다. 가끔 흑인 강도들에게

 희생이 되는 동포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발생하고

있어 험한 흑인지역에서 하는 사업이란 생명을

내놓고 하는 사업이다.

 

 내가 군생활 하면서 흑인들로 부터 격은 체험은 내 인생에서

가장큰 소득의 하나가 아닐가 하고 샹각한다. 보통 한국인들이

 흑인들을 보면 피부가 검다고 무조건 깜둥이라고 무시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듯, 흑인들 또한 한국인 이라면 자신들의

지역에 들어와 흑인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서 흑인사회에

한푼도 환원을 하지 않는 유태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역시절 격은 흑인들은 나를 보면 졸병들이라도 내 계급은

안중에도 없고 한국인들이 흑인을 깜둥이라고 무시하듯 나를

우선 무시하면서 내말 꼬투리를 잡는 흑인들이 꽤있었다.

 

그중에 같은 계급의 흑인 부사관이 내가 소대 선임 부사관이

라도 사소한 일을 가지고 나에게 시비를 걸며, 자신은 일등 미국

시민이고 나는 이등 시민이라고 대 들었다. 이부사관의 콧대를

어떻게 껵을가 하고 생각하다가 흑인들의 자손심을

일격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니 말대로 너는 일등시민이고 나는 이등시민이다, 그러나

너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너의 조상은 아프리카로 부터

노예선을 타고 왔지만 나는 747점보기를 타고 이민 왔다,

바로 이점이 너와 나의 틀린점이야, 너 이제 알겠지?

도토리 키재기 같은 언쟁이었지만, 이한마디에 그 흑인 부사관은

기가 죽어 내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이런 흑인들 보다는 양순한 흑인들이 더 많았다. 그들이나

동포나 소수민족으로 서로 돕고 살아야 되는 이땅에서 인종적인

 편견으로 가끔 충돌이 있으나 그것은 서로를 이해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사고들이다. 이민 40년에 아직도 나를 찾아주고

또 찾아 가는 친구는 흑인들 밖에 없다. 다급하면 모른척하는 백인들

보다 의리를 지켜주는 흑인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60년대 마틴 루터 킹박사의 민권운동으로 소수민족의 인권이

신장되였다는 사실을 많은 동포들이 간과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흑인 가수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마할리아 잭슨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흑인 영가의 여왕으로 미국에서 추앙을 받는 유명한 가수다.

 MAHALIA JACKSON Live late 1960's We shall overcome

 

 

한국에 판소리가 있다면 미국 흑인들에게는 흑인 영가가있다.

판소리를 들을때 5천년 한국인의 한을 느낄수 있듯 흑인영가를

듣고 있노라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와 미국에서 200여년간

흑독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노예 생활을 했든 흑인들의 애환을 느낄수가 있다.

 

판소리를 세계인들이 흉내 낼수 없는 것처럼, 흑인들의 독특한

목소리는 타인종이 흉내를 낼수 없다. 마할리아 잭슨의 흑인 특유의

음성으로 부르는 영가를 듣을 때면 100도가 넘는 날씨에 농장

주인들 로 부터 매맞으며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는 가련한 흑인노예들의

모습이 떠올라 나를 슬픔으로 빠져 들게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Mahalia Jackson (October 26, 1911 – January 27, 1972)

마할리아 잭슨은 루이지아나 주에서 태어났다. 16세때 그녀는 인종

차별이 극심한 남부를 떠나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이주했다.

 

1963년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마틴 루터 킹목사가 25만명 군중앞에서

" I Have a dream" 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할때 마할리아 잭슨은 "나는 멍청이였다,

나는 멸시 당했다" 두곡을 부르며 마틴 루터 킹목사의 인권운동에

동참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그녀를 천년에 한번 태어날수 있는 아름다운

음성을 지녔다고 극찬했다. 그녀는 흑인영가 가수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중의 한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아침부터 쓰기 시작한 이포스트는 흑인얘기 중에 빼어 놓을수

 없는 Buffalo Soldier(들소 군인)의 전설 같은 이야기도 겻들였다.

(흑인기병대 이야기 언젠가도 한번 쓴적이 있지만)

 

들소 군인은 1866년 9월 21일 캔사스주 Fort Leavenwort 에서 창설 되였다.

남북전쟁이 끝나자 미연방정부는 인디안 부족을 토벌하기 위해서

흑인들로 구성된 제10 기병 연대를 구성했다. 흑인 기병대가 들소

군인이라는 별명을 얻게된 이유는 인디안 부족들이 흑인들의 용맹성을

들소에 비유해서 그들을 들소군인 이라고 부르면서 흑인기병 연대의

이름이 되였다.

이들을 주제로한 영화가 1970년대 초에 제작 되였으나 요즘 기억력이 좋지

않아 그영화의 제목을 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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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을 입은 19세기 말의 들소 기병대 주임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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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북을 입은 기병대 주임 상사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캔사스주 Fort Leavenworth 기념관에 소장 되여있는 흑인기병대의 장비

 

아래는 마할리아 잭슨의 Amazing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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